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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quisitor Trevelyan

Written by  마리아

기억  ]

 오랜만에 옛날 꿈을 꿨다.

 스카이홀드의 가장 높은 층 중 하나에 자리한 넓은 개인실에서 성인 두어 명쯤은 대자로 뻗고 누워도 충분할 만큼 커다란 침대 위에 혼자서 평소와 다름 없는 아침을 맞이했을 때, 인퀴지터는 여느 때와 다른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일어났다. 눈을 뜨고 잠시 동안 감각과 기억에 혼란이 찾아와, 이곳이 스카이홀드이며 인퀴지터의 개인 집무실이자 침실이지 오스트윅의 트레벨리안 저택이 아님을 인지할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콘클라베에 참가하기 위해 오스트윅을 떠난 이후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이러한 혼란을 난데없이 느낀 이유는 아마도 간밤에 꾸었던 꿈 때문일 것이다.

 꿈에는 그리운 얼굴이 나왔다. 맥스웰 트레벨리안. 그녀의 둘째 오빠.
 트레벨리안의 막내인 에블린은 위로 오빠가 둘 있다. 장남인 에드워드는 트레벨리안 가문의 차기 가주로, 사실상 거의 모든 실무를 직접 수행함으로써 현재 오스트윅의 실세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트레벨리안의 가주 자리를 물려받을 그는 어릴 적부터 온갖 특별한 교육을 받고 실무를 수행하는 연습을 해야 했기에 형제임에도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반면 그런 점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맥스웰과 에블린은 에드워드보다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아버지는 원체 성정이 무뚝뚝하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데다 차기 가주인 에드워드를 육성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기에 가족의 정을 느낄 만한 존재는 서로가 유일했다. 적어도 어렸을 적에는.
 맥스웰과의 기억은 철도 들기 전 아주 어린 시절에 한정되어 있다. 이제는 얼굴조차 흐릿해질 정도로 시간이 오래 지났고, 그만큼 오래도록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오래된 기억을 이제 와서 떠올리고 꿈까지 꾸게 된 이유는 아마도 어제 그녀에게 무심코 던져진 질문 때문이었으리라.



 전 대마도사이자 (굳이 ‘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더 이상 그녀가 그 직함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법사 반란의 수장이었던 피오나는 인퀴지터에게 왜 마법사를 돕기로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건 압니다만. 그녀는 스스로도 어색한 듯이 그렇게 덧붙였다.

 인퀴지터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녀는 양손의 칼과 특유의 날렵함을 무기로 싸우는 근거리 전투원이며, 그녀의 집안 또한 마법과는 거리가 먼, 독실한 챈트리 가문이다. 마법사와 템플러 중 동맹을 결정해야 했을 때, 그녀가 템플러의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안드라스테의 전령’은 마법사를 돕기 위해 레드클리프에 왔으며, 절망적인 미래를 다녀온 뒤에도 마법사를 지지하고 동맹으로 받아들였다. 그러한 전령의 결정들에 피오나는 깊은 감사와 안도를 느꼈지만 동시에 합당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어 의문과 미미한 불안을 품었던 것이다.

 피오나의 질문을 받은 인퀴지터는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피오나는 괜한 질문을 해 인퀴지터의 심기를 거슬렀나 싶어 불안해졌다. 동맹 관계라고는 하나, 스카이홀드의 마법사들은 사실상 인퀴지션에게 구제를 받은 입장이었다. 피오나는 이곳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칫 인퀴지터의 심기를 거슬러 동맹 관계를 철회당하기라도 했다간, 마법사들은 순식간에 이전의 상황으로, 아니 어쩌면 전보다 더 나쁜 처지에 놓일지도 몰랐다. 피오나는 적절한 말을 골라 얼버무리면서 이 대화를 끝마치려고 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싫었거든요.”


 오랜 침묵 끝에 꺼낸 인퀴지터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피오나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의문 가득한 얼굴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인퀴지터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 오빠는, 이단 마법사입니다.”


 피오나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것은 그녀의 고백이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말하는 이야기. 다른 동료들이나 조언자들과 평소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피오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이게 인퀴지터가 처음으로 꺼내는 이야기라는 것을 피오나는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피오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유감이군요.”


 평생을 마법사로서, 그리고 대마도사라는 칭호까지 얻을 정도로 오래도록 마법사 협회 소속으로 살아왔던 피오나는, 이단 마법사를 형제로 두었다는 사람에게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 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인퀴지터는 짧게 “…네.”라고 답했다.



 소년에서 청년이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마법 능력이 발현된 맥스웰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그를 오스트윅 협회로 보내는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마치 필요없는 짐덩이를 치워버리듯이.
 그리고 협회로 간 맥스웰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식 입회 절차가 있기 전날 밤에 사라졌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스스로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의 소지품 중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이 적절히 없어져 있었으니까.
맥스웰이 언제부터 도망칠 마음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오스트윅 협회에 도착하고 나서? 아버지가 협회에 보내기로 결정하고 정식 절차를 밟았을 때?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마법사임을 깨닫자마자?
 하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맥스웰은 자연히 트레벨리안 가문에서 퇴출되었고 더 이상 트레벨리안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한낱 이단 마법사로 트레벨리안과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 절차를 아주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수행한 것은 아버지였다.

 그 이후로 에블린은 맥스웰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가족이라고 느낄 만한 존재가 사라지고 나자 에블린은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트레벨리안의 집안에서 아주 오래도록 홀로 지냈다. 맥스웰과 함께 했던 시간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쯤, 에블린은 거의 맥스웰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그리우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으냐고 물으면, 별로, 라고 답할 것이다. 지금 느끼는 그리움은 유년 시절 기억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어릴 적 행복했던 추억의 향수. 혀끝에 남은 잔향 같은 것으로, 처절하고 사무치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어쩌면 내버려두기 싫었던 것은, 맥스웰이나 마법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끈, 하고 문득 치밀어오르듯 덮쳐온 두통에 인퀴지터는 얼굴을 찡그렸다. 가만히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인퀴지터는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도 기억이 너무나 흐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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