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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quisitor Adaar

Written by  송운하

쿠나리, 마법사, 헤라 아다르  ]

 헤라는 새로 주운 테다스의 술을 선반에 올려두고 남은 빈 자리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얼마 남지 않았다. 아니 사실 지금 가진 수량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란 게 대장 아니 사장의 입버릇이므로.

 하지만 헤라 아다르가 용병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갈만한 건 술 정도였다.

 마법사 용병은 드물고 쿠나리 마법사는 더욱 드물다. 드물기 때문에 꺼려지는 건지, 꺼려지기 때문에 드물어진 건지, 지금에 와서는 선후관계를 따져봤자 의미 없는 이야기. 마법사의 물품에 손대서 저주를 받은 일화와 마법사의 선물을 받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인식 또한 그런 연장선이었다.  

 '...고마워요.'

 조세핀이 그렇게 말하며 두 손에 받아든 문장을 살피듯 내리깐 시선을 들어올렸을 때, 마법사는 처음으로 선물하는 기쁨을 느꼈고

 '별 말씀을.'

 연인을 납치하는 대신 자신의 뿔을 잘라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병대로 돌아가야 한다. 동료들이야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한 독이 들어있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는 체질이니, 술이라도 취해있으면 형벌을 좀 줄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수집인데, 과연 잘될 런지 어쩔 런지.   

 헤라는 뿔난 곳을 긁적거리며 느린 걸음으로 창고를 빠져나왔다.  

 스카이홀드를 떠나기 전에 달콤한 빵과 과자를 한 자루 받아갈까.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설탕을 듬뿍 넣으면 일주일 정도는 썩지 않고 버틴다던데. 달기만 하다면 다른 건 어찌되든 만족할, 짧은 뿔을 떠올리며 돌아선 모퉁이에서 헤라는 낯선 문을 발견하고 혼란을 느꼈다.   

 "이런 곳도 있었나?"

 원래 헤라가 가고자 했던, 연인의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은 낯선 문이 있는 곳에서 바로 맞은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기에 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헤라는 고개를 한번 기울이고 문을 열었다. 사방이 거미줄로 뒤덮인 곳에서 커다란 책상과 책장이 보였다. 책상 위 책이 펼쳐진 페이지에는 마법진도 그려져 있었다.  

 "오, 가져가서 팔면 돈이 꽤 되겠네."

 헤라는 등에 멘 지팡이를 꺼내 쥐고 문턱을 넘어섰다. 헤라가 촛대에 가까워지자 자동으로 불이 붙어 빛이 생겨났다. 열기 없는 장막화염이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나무뿌리가 달라붙은 책꽂이를 지나 바닥까지 늘어진 거미줄을 헤치고 책상에 다다르자,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할 거면 문이 열리는 것도 자동으로 해두던가. 이래서 탑 출신들은."  

 헤라는 쇠사슬이 단단히 걸린 마법서를 포기하고, 열쇠구멍 모양처럼 기묘하게 확장된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책장에 촘촘히 꽂힌 책들은 대부분 책제목이 지워져 있었고, 그나마 어렴풋이 남은 문자는 글인지 그림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았다.

 걸어온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먼지가 하얗게 깔린 바닥. 마법서의 페이지를 좀 뒤적거렸을 뿐인데 먼지 묻어 회색으로 변한 손가락. 책상과 책장 사이에 쳐진 거미줄에 달린 흔적은 거미의 시체인지 허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책장 사이 해골에서 특유의 쨍- 소리는 안 나는 걸 보니 오큘라룸은 아니고. 취미 참 지저분하네.

 헤라는 약간의 고민 끝에 다른 마법사에게 보이기 위한 증거로 가장 얇아보이는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집어들고보니 얇은 게 아니라 속표지와 페이지가 뭉텅뭉텅 뜯겨나간 불량품이었다.

 역시 그림에 가까운 책제목에 기대 없이 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책 중간쯤에서 낯익은 문자를 발견하였다. 모르는 문자를 건너뛰어도 대충 문장이 될 정도였다.

 헤라는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고 눈과 입으로 더듬더듬 읽어내리며 다른 한손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주저앉았다.

 사냥꾼은 ???-사냥해서는 안되는 것?을 사냥한 뒤에도 뉘우치지 않아 저주?를 받았고,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못하는 저주?를 받은 뒤에는 자신에게 저주?를 건 ???에게 찾아갔다. ???는

 다음 페이지는 또다시 뜯겨져나가, 다시 읽을 수 없는 문자뿐이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겨보고 거꾸로 처음 페이지까지 넘겨보았지만, 다른 낯익은 문자는커녕 좀 전에 읽은 문장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헤라는 어리둥절해하며 두어 번 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본 끝에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어선 건지, 앉은 건지, 바닥에 쓰러진 건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헤라는 뒷목을 긁적거리다가 팔짱을 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실제야 어떻든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묘한 공간. 이상한 방. 이런 식이라면 방을 빠져나가는 즉시 문이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책상째로 마법서를 들고 갈걸 그랬나. 아니 쇠사슬 걸린 부분만 부셔서... 에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헤라는 궁시렁거리며 본격적으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어차피 지팡이도 없겠다, 될 대로 되라지.

 시간이 좀 지나면 누군가 자신을 찾으러 오리라. 여기가 페이드라면 엘프 마법사가, 룬에 관련된 거라면 드워프가 해결해줄 테고. 다른 마법이라고 해도 스카이홀드에 머무르는 인간 마법사 또한 한 둘이 아니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이참에 무능한 인퀴지터라고 소문나서 몸값이나 좀 낮아졌음 좋겠네.

 

'아다르,

 

헛생각하지 말고 너의 새로운 계약에서 보수나 제대로 받아와라.

지금 내 옆에서 카리스가 네 작은 황금 인간에 관한 소네트를 읊어대고 있다.

이게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르겠군.

빨리 와서 이자식 입 좀 닥치게 해라.

 

쇼크라카

 

P.S 우리 단골고객께서 12자리를 제시하셨다. 최저가로. 첫 번째 규칙을 떠올려라.

 

P.P.S 신혼여행 준비해뒀다.'


 애써 잊고 있었던 자릿수를 떠올리고 헤라가 말 그대로 머리를 쥐어뜯을 때에 좌우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적의는 없었다. 다만 이런 기묘한 공간에서조차 좌-우를 다 차지한다고 느껴질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오랫동안 말없이 내려다보는듯한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다. 눈도 두개 이상인 것 같고.

 헤라는 여기서 빠져나가면 다시는 드워프들을 머리위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오른손에 턱을 괴었다.

 "싸울 거야? 아니면 여기서 내보내주든가."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헤라는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어처구니없어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럼 누가 나를 공격해오는데 가망 없다고 발 뻗고 죽을까? 어떻게든 싸워야지. 싸우다보면 이겨서 살수도 있는 거고. 근데 내 지팡이는 어디로 가버린 거지? 설마 나 지금 알몸인가? 이런, 젠장. 신발에 숨겨놓은 나이프도 못 쓰겠네.

 시선이 사라졌다.

 "...쪼잔하기는."

 헤라가 궁시렁거리며 재차 바닥에 드러눕자, 뿔이 의자에 부딪쳤다. 다시 거미줄로 뒤덮인 그 방이었다.

 "오, 방금 한 말은 취소. 살려 보내줘서 고맙다, 짜샤."
 "그전에 이런 수상쩍은 곳에, 그것도 혼자서 앞뒤 생각없이 들어간 것부터 반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균열을 닫고 세상을 구원할 안드라스테의 전령께 이런 건 사소한 시련에 불과하시겠지만요."

 문턱에 선 엘프 마법사가 자신의 발밑에 환하게 빛나는 마법진을 깔면서 비아냥거리는 말에, 헤라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어...음...그러면 다음부턴 문이 안 닫히게 지팡이를 끼워둔다든가?"

 아다만트 요새에서 워든을 받아들였을 때를 연상케 하는 한숨소리가 났다. 사실 그 이후부터 엘프 마법사와 마주칠 때마다 약간 저런 소리 없는 한숨이 느껴졌다.

 염소뿔이 한 한달 정도 저런 표정으로 넋 빼고 돌아다녔었는데. 무슨 경주에서 돈이 부족하다고 제일 확률 낮은 곳에 걸었다가 중반부터 그게 3위를 달리고 막판에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고 했었나? 엘프 마법사는 아직 한 달이 안됐나 보군.  

"일단, 거기서 나오십시오."

 헤라가 주섬주섬 지팡이와 마법서를 뜯어 챙기고 방 밖으로 나오자, 바닥의 마법진이 흐릿해지고 문이 닫혔다. 예상했던 대로 문이 사라졌다. 여기에 문이 있다는 걸 까먹지 않도록 벽과 바닥에 단검으로 표시하는 작업이 끝나자, 엘프 마법사가 손을 내밀었다.

 헤라는 고심 끝에 단검의 날을 잡아 손잡이부분을 내밀었다.

 "책, 주십시오."
 "아.......역시 팔면 저주받는 건가. 그 저주 쪽만 어떻게 해결하면."
 "인퀴지터."

 헤라는 시무룩한 얼굴로 마법서의 예상판매가를 계산하고 억지로 시선을 떼내어 한 손으로 마법서를 내밀었다. 그자신보다 두꺼운 마법서를 받아 옆구리에 낀 엘프 마법사가 한동안 말없이 인퀴지터를 살폈다.     

 "주머니에 든 그 책은,"
 "음? 무슨 책? 어, 있었네? 줄게, 자."
 "...그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 책에 걸린 마법이 자신의 전 재산보다 귀중하다 여기는 마법사와 만나길 빌어드리죠."   
 "그전에 내가 직접 돈 모으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거기다 단순한 이야기책을 사기 쳐서 팔아먹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헤라가 내민, 페이지가 뜯겨져나가 얇아진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엘프 마법사가 말했다.

 "읽으셨습니까?"
 "어쩌다보니? 근데 두번은 안 읽혀지더라고."
 "이상하군요."

 엘프 마법사가 한손으로 책표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마법은 제대로 남아있는데."

 헤라가 말했다.

 "살려줘서 고마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오셨을 때 바로 감사인사를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아, 못 들었어? 하긴 했는데, 아무튼."

 헤라는 뿔난 곳을 긁적거리다가 팔짱을 끼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까지 여러 번 날 살려줬잖아? 좀 늦었지만 그걸 한꺼번에 감사인사한 셈 치자구."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아다만트라든가 맘에 안 드는 선택을 했다고해서 너무 오랫동안 꽁해있지 좀 마. 네 맘에 드는 선택을 한다고 그 결과까지 책임져주는 건 아니잖아, 솔라스."  

 솔라스는 쿠나리 마법사를 오랫동안 올려보다가 마침내 이해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꽁해있어서."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한 건데. 뭐-, 이제 와서 말해봤자 소용없나."

 헤라는 한숨을 내쉬며 얇은 책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쨌든 선물 고맙고, 난 먼저 올라갈 테니까, 제발 마지막엔 좋게 좋게 헤어지자. 어차피 얼마 안 남았잖아?"  

 헤라가 계단을 반쯤 올라갔을 때, 아래층에서 문이 열렸다가 곧바로 닫히는 소리가 났다.

 계단을 다 오른 헤라가 문을 열자, 변함없이 책상에 앉아 펜을 움직이는 연인이 보였다. 보자마자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심부름꾼 혹은 요원이 헤라의 옆을 스쳐지나가자 곧바로 연인의 표정이 바뀌었다.    

 헤라는 문틀에 기댄 채로 몽틸리예 대사가 요원의 보고를 받자마자 쓰던 편지를 왼편으로 밀치고 새로 전달사항을 써내려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렇게 쓰다가 중간에 보류한 서류는 두 자릿수였고, 자리가 모자라 책상 아래에 떨어진 종이도 적지 않았다.

 창 밖에서 해가 저물었다.

 헤라는 벽에 기댄 채로 몇 안 되는 마법을 사용하여 벽난로와 초에 불을 붙이고, 그늘진 얼굴의 연인에게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바람 불면 날아가겠네."

 대답 대신 화가 덜 풀린 시선이 돌아왔고, 헤라는 머쓱한 표정으로 콧등을 긁적였다.

 저 중에 인퀴지터가 아닌 헤라 아다르와 관련된 서류는 얼마나 될까? 삼분의 일? 절반?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말릴 수도 없었다. 대장과 결투해서 이기면 용병대를 그만둘 수 있다고 대충 둘러댔다가 들통난 게 벌써 한 달 전이니.

 코리피우스의 위협이 사라지면, 발로-카스 용병대는 아다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다. 그때 교섭으로 용병대에게 아다르의 몸값에 상응하는 것을 지불할 예정이라고, 헤라의 연인이 말했다. 그 몸값이란 게 이젠 인퀴지션의 금고를 다 털어도 모자랄 판국이지만.

 부모이자 스승으로, 나아가 동료로 키운 상대를 돈 따위에 팔아넘길 수 있다니. 정말이지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었다.  

 용병대의 다른 모두가 나간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고, 한번 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대장을 모욕하고 결투신청을 받아내서, 결투에서 이긴 후에 대장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는 게 뭐가 무섭다고 반대하는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좀 여러 군데 잘리긴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죽는다면 내 운이 부족한 거고, 나대신 대장이 목숨 걸고 조세핀을 지켜줄 텐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으며 헤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흠, 오늘도 목욕하지 않으면 말도 못 붙이는 건가."
 "두 번 하세요. 우리 인퀴지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으니 내일 작전실에 들어올 땐 각오 단단히 해두라고 전해주시구요."   
 "저런, 그분이 하루라도 빨리 메세지마법을 터득해야겠네. 그러면 대사님의 목소리를 좀 더 자주 들을 수 있을 텐데."
 "그 인퀴지터에게 전해주세요. 글쓰는 법을 배우시면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도 같이 볼 수 있다고 말이죠."  
 "안타깝지만 그분은 정말로 그쪽엔 재능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헤라에게 조세핀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한숨과 함께 손키스를 날렸다. 단박에 손키스를 받아든 헤라가 그것을 한웅큼 삼키며 떠나고, 엇갈리듯 방에 들어선 심부름꾼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야근을 안 하는 걸로 결정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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