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quisitor Adaar
Written by 숨
[ 상처에 관한 이야기 ]
오렌지 빛 태양으로 가득 찬 방안 탓에 고즈넉해 보이는 저녁 때문일까, 아니면 자나 깨나 항시 붙어 다니며 그의 한쪽 팔이 없어졌다고 괴롭히는 건지, 진심을 다해 걱정이 돼서 수발을 들어 주는 건지 모를 그런 시종들을 물리쳐 가며 몇 시간째 보이기 민망한 글 뭉치들과 씨름 한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하필 제일 쓰기 싫은 부분을 남겨 두고 있어서 인걸까. 그는 아무 것도 안 써진 종이 끝을 펜 끝으로 한참 두들기다가 오랫동안 잡고 있던 깃펜을 꽂이에 꽂아 넣었다.
“아무리 봐도 어색해서 참을 수 없는 이 글이란.”
그는 퉁명스레 말을 던지며 괜히 화풀이를 하듯 하염없이 텅 비어 보이는 종이 끝을 매만지다 자신의 꼴이 우스워 보였는지, 잡고 있던 종이를 놓고서는 푹신한 벨벳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생각에 잠긴 채 훤한 창문에 들러붙듯 반짝거리는 황혼 빛을 조용히 응시했다.
몇 해 전, 그의 동료와 여기저기서 끌어다 모은 심문회 군대들과 함께 대 회색감시자 공성전을 전개 하던 도중, 다 무너져 가는 아다만트 성채에서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닻을 이용해 균열을 열어 의도치 않게 영계로 진입하게 되고, 그 한없이 불안정한 공간까지 와 작고한 교황 저스티니아에게 심문관이 닻을 얻기까지의 모든 진실을 얻었으며, 거기에 코리페우스를 뒤에 업은 악몽과 맞서 싸운 그 날 이후부터, 그와 같이 따라가 이 상황을 지켜봤던 그녀가 평소라면 쉴 새 없이 검술을 연마했을 익숙한 검을 놓은 채 펜과 종이를 붙잡으며 책상에서 씨름하고 있는 걸 그는 보았다. 영계에서 보낸 일들을 그냥 흘러 보내선 안 된다며 써야 한다고 그랬었지.
그녀와 같이 고민을 나누고 얘기 하면서 그 역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자신이 지금껏 보내왔던 모든 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 느꼈다.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된 글 뭉치가 지금까지도 자기를 괴롭히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그것도 누가 볼지 말지조차 모를, 그전에 이 글이 제대로 보존될지 조차 불투명한 종이 찌꺼기에 말이다.
그 때의 그 기억을 떠올리며 짧게 탄성을 내뱉듯 웃다가 이내 한숨지었다. 한 줌의 휴식 같은 이런 기억은 떠올릴 때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지만 이젠 그것을 접어버리고 슬슬 쓰기 싫은 기억도 끄집어내야 할 때였다. 그렇게 한참 책상을 하염없이 두들기기만 했던 그는 다시금 꽂이에 꽂아뒀던 펜을 꺼내들어 그가 한참 괴롭힌 탓에 끝이 꼬깃꼬깃 해진 그 백지 앞에서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 가며 문장을 적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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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러질 듯 여기저기 곰팡이가 슬고, 군데군데 거미줄이 쳐져 있어 이곳이 오랫동안 사람 손길에서 벗어 난 지 상당히 오래됐다고 넌지시 말해줬지만 지금 이 순간엔 달랐다. 적어도 이 집의 복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인 좁디 좁은 계단만큼은.
꽤 오래전부터 지옥에나 빠질 이 엿 같은 것들이 자기를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설령 실제 시간이 단 몇 분 만에 벌어진 일이라도 지금의 그한테는 자기한테 보여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억겁의 시간 마냥 길게 느껴졌다. 만약 저들이 마치 어느 도시에든 존재하는 번화가 주점 앞에서 흔히 늘어져 있는 진상 취객마냥 들러붙어 그를 붙잡고 있었다면 비록 그가 그의 종족 사이에선 신장도 작은데다,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 다 자라지 않아
짤뚱한 뿔이 말해주듯 나이도 어리고 그래도 그의 피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반쪽의 쿠나리 혈통을 증명하듯, 이들이 무기도 없이 몰아 세웠다면 완력으로 가뿐히 제치고 얼른 몸을 내뺐겠지만, 안타깝게도 저 쪽은 작정한 마냥, 그를 죽이겠다면서 친히 함정까지 파놓고 그들의 손과 손에는 온갖 무기를 들고 있는 채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교도. 도적 엿 같은.”
그를 이곳까지 수고로이 함정까지 파서 몰아세운 그들은 언어에서만큼은 젬병 이었는지, 그나마 익숙한 누군가를 데려다가 말을 하라 시켰겠지만 그 역시 그 말을 겨우 하는 듯 더듬으며 단어를 골라 말했으나, 서투른 말 속에 담겨진 적의와 분노만큼은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단어 하나마다 당장이라도 그를 물고 뜯어버릴 송곳니가 되어 버릴 듯 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너희들 몰라.”
너무도 선명하게 적의를 드러내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저들은 그의 변명 아닌 변명 따윈 저 멀리 다 잡아 던져 내팽개치듯이 그들은 마치 저 귀족 나으리들이 즐겨 한다는 여우 사냥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냥개를 풀어 그렇게 덫이 놓아진 곳이나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 같이 온갖 무기 끝을 그에게 들이댄 채 자기들만 알 수 있는 괴성을 질러가며 완벽하게 에워싸 집 코너로 몰았고, 그는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려든 여우마냥 맥없이 수렁에 빠져버렸다.
보이는 거라곤 시뻘겋게 타올라 자신을 삼킬 듯이 바라보는 횃불과 그 무리들 속에 흐르는 무시무시한 공기 탓에 그의 오감 안은 찰나와 같이 모든 기억들이 흘러들어 갔다. 기껏 해 봐야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그가 이겨먹고 싶었던 누나 에르도안과의 투닥 거리고 장난쳤던 기억, 코흘리개 시절 완고하기 짝이 없던 스승님과 첫 대면의 기억, 이것이 뭔지도 모른 채 가슴에 어렴풋이 흘러 앉혀놨다가 그대로 보내버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첫 사랑의 얼굴, 그리고 짧게 스쳤던 키스의 촉감.
그렇게 그가 멍하게 있던 도중, 그들 중 가장 용감한 이로 보이는 누군가가 녹이 잔뜩 슨 창 끝으로 그의 목을 날카롭게 겨눴을 때, 그는 불현듯 재빨리 몸을 숙여 그가 낼 수 있는 힘을 최대한 짜내 군중들의 빈 틈을 노려 파고 들어가 밀쳐내고 최대한 그가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는 고지를 택하기 위해 둘러보다 계단을 선택해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무기만 그럴 듯하게 들었을 뿐 상당한 오합지졸들이어서 그랬을까, 그가 돌발적으로 한 행동으로 벌어진 일에 당황해 하는 듯 웅성거리다가 그들 중에 그나마라도 멀쩡한 이가 있었는지 그의 소리에 무리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뭐라 외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있는 계단으로 뒤 따라 올라갔다.
“난 씨발, 너희들이 누군지도, 나한테 이러는 지 전혀 모르겠지만, 자꾸 그딴 식으로 날 몰아 세우지마.”
어찌어찌 고지를 점령한 그는 허리춤에 놓인 전투 단검만이라도 황급히 잡으며 이내 스승님과 용병단에서 배웠던 걸 상기하면서 자세를 잡고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숨을 집어삼켜 안정을 취한 후 으적대며 씹어 삼키듯 말했다. 그들이 그가 한 말에 대해 제대로 알아 먹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그의 단검에서 느껴지는 적의만큼은 확실히 알아 먹었는 지 정적이 흐르는 이곳에서 들리는 거라곤 오로지 각자가 손에 쥔 무기들을 그러 잡은
절그럭거리는 소리, 타들어가는 횃불의 바싹 마른 소리, 바스락 거리는 발 소리, 이 세 가지 뿐이었다.
그렇게 위태한 정적이 폐가에 가라 앉아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불안케 하는 사이에 누군가가 질러댄 괴성과 함께 그들이 든 창 끝은 미약하게 저항하는 그의 심장을 향해 겨눠지고, 이내 어린 쿠나리는 좁은 틈사이로 파고드는 창들의 움직임에 맞춰 그를 향해 먼저 허술하게 돌진해오는 것을 움켜잡고 뿌리쳐 계단 바깥쪽으로 던지고는 순간적으로 등을 내 보인 상대를 재빠르게 그의 손에 움켜쥔 단검으로 빈 등과 목에 깊숙이 찔러 넣어 숨통을 끊었다. 온갖 숙련된 용병과 전사들이 뒤엉켜 싸우는 전쟁터에서조차 그들의 눈 앞에 버젓하게 전시되는 피와 살점과 죽음은 그들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할 진대, 하물며 갓 스물 남짓한 어린 용병과 이런 일에 익숙하지도, 훈련 받지도 않은 일개 농민, 부랑민이야 어떠하겠는가.
“으아아아아!”
맨 처음 달려들었던 한 이가 그렇게 피를 뿌리며 쓰러진 이후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함성과 함께 그들이 서 있는 좁디 좁은 계단은 하나의 지독한 전장이 되었고 그 이후 이 폐가를 가득 메운 건 왕왕 대는 소리, 금속과 금속, 금속과 살점이 맞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붉은 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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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단이 머무는 캠프에 밤이 찾아오고 어둠이 밀려왔지만 여전히 한 텐트만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고, 그곳에선 얼핏 아무 감정 없이 텐트를 밝히는 등불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걱정 어린 눈으로 눈가가 미세하게 떨린 채 앉아 자릴 지키고 있는 쿠나리 여인이 있었다.
“망할 녀석, 왜 이 시간이 지나도록 오질 않고 뭘 하는 것이야.”
밤하늘 한 가운데 걸렸던 보름달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태양이 산등성이를 타고 슬쩍 그 머리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그녀의 어린 제자가 예정된 훈련 따윈 내팽개치고 낮부터 낯선 마을에서 놀겠다며 제멋대로 뛰쳐 나가 버린 이후, 어떤 소식도 없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에 초조해져 왔다. 훈련이 재미없다며 걸핏하면 장난치고 뛰쳐나가 놀러 다니던 녀석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이야.
처음 그녀가 제자의 오랜 부재를 알아차리게 된 건 캠프를 지키고 있던 야간 보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녀에게 순번이 됐음을 알렸을 때, 그와 동시에 그녀의 제자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언질 한 후부터였다. 보초 역시 그가 워낙 놀길 좋아하는 아이니 마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술집에서 밤새도록 놀고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 장난스레 얘기하고 자신의 텐트로 돌아갔지만 그녀는 수긍 하면서도 한편으론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공용 캠프파이어 옆에서 보초를 서는 동안에도 한참 동안 그의 그림자는커녕 짐승의 그림자조차 비춰지질 않자 그녀를 오랫동안 지탱해온 벗인 낡아 빠진 스태프를 기어이 쥐고 망토와 후드를 걸치고서 몰래 캠프 밖을 빠져나가 마을의 선술집을 찾아 나섰다.
작지만 시끌벅적한 마을의 작은 술집에 후드와 망토를 쓰고 있지만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뿔 달린 거대한 여인의 생경한 모습에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지만 다시금 원래의 소음이 돌아왔고, 그 인파속에서 꼴사납게 바닥에 드러누워 술에 취한 채 뒹굴어 대는 자신의 제자를 찾길 바랐지만 돌아온 건 허공에 걸려 맴도는 시끌벅적한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소득도 없이 술집 밖을 빠져나와 과장보태 한 줌도 안되 보이는 작은 마을의 온갖 구석구석에 그가 있을까 싹싹 뒤져 보아도 역시나 소득이 없긴 매 한가지.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금 상황이 마뜩찮았지만, 시커먼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이 밤에 지금 당장 그녀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기에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다시금 용병단 캠프로 돌아와 자고 있던 쇽라카를 깨워 이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실종된 제자를 찾도록 설득시켜 결국 온 용병단에 비상령이 떨어져 실종된 그녀의 제자를 찾아 내기 위해 지역을 수색하도록 만들었다.
“....이 녀석, 돌아오면 한 달 동안 어디 못 가게 묶어놓고 훈련만 줄기차게 돌릴 줄 알아라.”
그녀의 한숨 섞인 투덜거림 이외엔 오직 적막만이 가득한 캠프에 잠시 후 파문을 내듯 바스락 거리는 발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그녀는 마치 바닥에 용수철이라도 깔아놓은 듯 빠르게 튀어 올라 텐트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의 진원지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그녀가 온갖 사람들을 들들 볶아가며 찾고자 했던 탕아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그것도 평소의 그럭저럭 깨끗한 모습이 아닌 피와 살점,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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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머리카락 색처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빨갛게 피로 물들인 채로 돌아왔지만 그의 스승은 되려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돌아와서 그녀가 한 거라곤 얌전히 그녀의 텐트 안에 들여 대야를 꺼내 그 안에 물병에 있던 물을 채워 넣고 새로이 꺼낸 깨끗한 천을 대야의 물에다 적셔 그의 얼굴에 묻은 누구 것인지 모를 피와 살점과, 어디서 얻어 왔는지 오른편 눈과 광대뼈를 강하게 내질러 달리는 듯한 상처를 가만히 닦아 주었다.
“....제가 어디서 이랬는 지 캐묻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아니고?”
오직 정적과 고요만이 흐르는 이곳에 제자의 건방진 말은 행동을 멈추기에 충분했지만 제자의 그런 반응이 어제오늘이 아닌데다, 거기에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으나 평소와 다른 제자의 눈을 보고 그녀의 한 쪽 입가를 가볍게 비틀어 둔채 웃으며 받아쳤다. 그렇게 피로 얼룩져 있던 얼굴이 얼추 정리가 되어 갔고, 그녀는 만약을 위해 남겨놨던 연고와 약을 꺼내 능숙하게 발랐다.
“....오늘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자신의 무릎에 가지런히 손을 두고 있던 제자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떼며 그 한마디를 꺼냈고, 무겁디 무거운 그의 말은 그녀의 목과 등을 시리게 만들고도 남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행동은 여전히 재빨랐다.
“계속 해 보거라.”
차분한 스승의 말은 그의 마음속에 깊이 박히는 듯해서 간신히 나온 말마저 막혀버릴 거 같았지만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 괜스레 주먹을 폈다 접기를 반복하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농민인 듯 보였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던 무기는 전문으로 하는 그런 자들이 드는 것과 달리 녹도 슬어 있고, 그들 중엔 낫이나 갈퀴라던가...그런 것도 있었으니까요.”
그가 겪은 난투가 꽤 험난했음을 증명하듯 그의 몸 이곳저곳에 드러난 찢겨져 너덜너덜해진 옷과 그곳에 퍼진 상처의 용태를 이곳저곳 살펴본 그녀는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처리하고서 다시금 그녀의 손길은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무모하지만 업보에 말려 버리게 된 불쌍한 그녀의 제자덕분에 그동안 비축해뒀던 약과 붕대를 다 써야 할 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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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실종됐던 그 덕분에 온 용병단이 뒤흔들렸던 날이 지났고, 그는 치료와 스승에게 고해 성사를 마친 직후 마치 그대로 잠들어 죽어버릴 것 같이 그렇게 하염없이 자신의 텐트에서 잠들어 있었다. 영원히 깨지 않을 듯 잠들었던 그가 며칠 뒤에 다시 깨어났을 때 다시 찾아간 스승에게서 그가 그렇게 있던 사이 지난 간 밤 마을의 청년들이 돌아오지 않아 그 일에 대해 제보를 받은 치안관이 사건을 조사했고, 그 일에 연관이 깊었던 그와 그가 소속된 용병단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으며 그들은 치안관에게 ‘적절한 대가와 언어’를 슬쩍 지불해가며 결국 그에게서 새로이 그 때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한다.
사건인 즉슨, 마을의 일부 무모한 청년들이 마을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도적과 그의 잔당들을 직접 벌하겠다며 그들을 찾아 나섰고, 그때 술집에서 위키드 그레이스 하며 놀고 있던 그를 발견한 청년 중 한사람이 하필 그가 그 도적과 꼭 닮은 생김새를 지닌 탓에 착각을 해버렸고, 그렇게 그들 틈 사이에 껴 그와 같이 놀아주며 이윽고 그를 술집 밖으로 꼬여내 그때 그 현장까지 불러 들였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그 사단이 났다고 했다.
차분한 톤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하는 스승을 바라보며 그는 어찌 할 수 없는 감정으로 머리 속이 폭발할 거 같았다. 그동안 벌어져 왔던 모든 일들과, 자신의 행동, 거기에 맞춰 나온 결과들. 자신의 훈련을 통해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 직접적으로 비춰졌던 피, 시체, 광기. 그리고 후회. 후회. 후회. 그는 한참동안 고개를 푹 숙이다가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놓여 있는 깍지 낀 손을 부산하게 매만지고 입술을
달싹거리다 스승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생기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죠?”
“그 답은 이미 네 마음 속에 있는 거 갔다만, 지금은 울어도 된다.”
스승의 그 말은 그의 마음속에 간신히 버티어 묶어 놨던 무언가를 풀어 놓았고, 그것은 마치 간신히 세워놓은 모래성이 파도에 밀려 부스러지듯 천천히 무너져 내려 이윽고 그를 무너뜨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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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그 기억들을 천천히 더듬어 가며 써내려간 그는 이내 다시금 펜을 내려놨다. 그리고 그의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던 흉터를 이마 위에서부터 광대 쪽까지 부드럽게 타고 내려가듯이 천천히 매만져 봤다. 그 날 이후, 그는 이 흉터를 보고 만질 때마다 그들을 생각했고, 그것은 어렸던 그를 지탱하는 강력한 지침이 되었다.
사자의 발톱은 최후의 최후 순간까지 미루다가 꺼내야 할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만 꺼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발톱을 드러내 찢어 발겼어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아야 한 다는 것, 마지막으로 피와 살점과 시체의 무게는 제 아무리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가장 무겁게 짊어져 가야할 무게란 것을.
그렇게 온갖 상념에 사로 잡혀 홀린 듯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황혼을 달리고 있던 방 안은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지금쯤 방으로 돌아와 쉬어야 했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한 번, 우리 교황님이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계시나 슬쩍 보러 갈까...?”
오랫동안 의자에 쳐박히듯 앉아 있었던 몸을 가볍게 일으켜 책상을 대강 정리하곤, 그대로 그는 어디선가 자신의 측근이나 겉으로는 챈트리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얘길 하지만 속으론 자신의 이득밖에 챙기질 않는 대주교들에게 시달릴지 모를 그녀를 보기 위해 방 밖으로 유유히 빠져 나갔다.
